2023年10月11日水曜日

ハングル字幕のあるユーチューブ

  字幕のあるユーチューブを二つ紹介します。

「북올림」は本の内容を朗読するチャンネルです。

「夜史야사TV」は昔の野史を短いドラマ形式で話するチャンネルです。

「夜史야사TV」はユーチューブから直接「夜史TV」と入力してください。

両方とも下に台詞の字幕が出るので、韓国語の学習になるかと思います。

時々見ながら韓国語の発音を覚えてください。


「북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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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史야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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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年8月25日金曜日

コロナ禍後のパリ紀行

「コロナ禍後のパリ紀行」

この三年間はコロナ禍の中で世界の動きがまるで停滞したような気がする。今年にはいてようやく少しずつ再発進を始めるように感じる。

去年の10月から日本も入国規制が緩和され外国人の入国が許可された。コロナ禍発生以来ほぼ三年ぶりの事で、ようやくコロナ禍終息に向かっての一歩かと思う。それは我々の美術分野にも及んでいるようだ。昨年の秋に韓国の油画界の元老で韓国芸術院の会員でいらっしゃる朴洸眞先生から連絡があり毎年パリのグラン・パレで開催される「Salon Comparaisons 2023」に一緒に行かないかとお誘いがあった。韓国のグループもこの二年参加を見送り三年ぶりの参加だとの話であった。コロナ禍も未だ完全に終わってない事と最近の円安で経費の問題もあり戸惑いもあったが、フランスは行ったことが無く前から一度は行きたい所でもありやはり行くことにした。遠いところと言えばイスラエルには行ったことはあるが、ほぼ東アジアだけで生きて来た私には初めての欧米の国である。心を決めてから思うと欧米文化の中心地の一つでもあるパリへの旅と考えるとだんだん嬉しさと言葉に出来ない不安も交差した。

今年のサロン展は214日から19日までの日程で、「グランパレ・エフェメール」というところで開催すると言う。元来の開催場所は1900年開催のパリ万国博覧会際に作られた会場のグラン・パレだとの事だが、設備が古く暖房が出来ないためこの三年かけて内部修理中だと言う。その様な訳で今はエッフェル塔の向かい側に新しく作った「グランパレ・エフェメール」というところを使うと言う。私は一番安いチケットを求め29日に東京を出発し香港経由で10日の朝パリに到着した。翌11日には韓国からのメンバーが来て、私を入れて参加者全員である16になった。今年は久しぶりの参加でもあり韓国からは参加作家全員が来てるようだ。泊まるホテルはエッフェル塔から近いCambronne駅すぐそばにあり便利なところであった。展覧会場であるグランパレ・エフェメールまでは歩いても行ける所である。

12日と13日、二日を掛けて絵の飾り付けをして、翌14日に内覧会があった。その時に分かった事だが以前マネやモネらが参加した「サロン・ド・パリ」やセザンヌやゴーギャン、ゴッホなどの落選者達が参加した落選展と言われてる「アンデパンダン展」など四つのサロンが一堂に開く展覧会でもあった。私が参加した「コンパレゾン展」もその中の一つである。あと一つはデッサンと水彩画を主とする「Salon Dessin Peinture À L’eau」があった。その様な経緯から見れば「サロン・ド・パリ」と「アンデパンダン展」はすでに200年以上の歴史を持っている。「サロン・コンパレゾン」は1960年頃に現代美術系のサロンとして出発したという。そう思うと感慨無量な気分も湧いてくる。会期中では世界各国の作家達が一同に参加し交流があった。私は日本と中国のブースにも訪ねて見たが日本や中国から来た作家は少なくほとんどがパリやニューヨークなど外国駐在の日本人が多かった。こんなに大勢の人が集まる事はコロナ禍以後、初めて見る場面かと思う。フランス自体コロナ規制が完全に解除されたのもあり和気藹々な雰囲気であった。

私は内覧会の翌日から初パリの美術館巡りに入った。最初はやはりルーヴル美術館かと思ってルーヴル、オルセー、オランジューリーなど順次に回ったが二週間の滞在日程でも一か所を二度訪ねる事は出来なかった。本当に多くの美術館や展示作品にはただただ驚きである。それと共にパリ全体の景観や地下鉄等の交通網も驚きであった。ただ一つ公衆トイレが少なく毎回カフェを利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やはり不便だった。各美術館入場の際には美術家連盟からもらっていたIAAカードが大変役に立った。一部私設美術館や企画展覧会以外は大部分無料で入場する事が出来、費用の節約になった。IAAカードを発行していただいた日本美術家連盟に感謝の意を伝えたい。


2023/03/02

 


2023年4月5日水曜日

 このたび3月を持って多摩美術大学を定年退職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2004年から19年間になります。その間、三年間は了徳寺大学も一緒の時期もありました。在職中、充実した日々を過ごせたのは他の先生方や共通教育センターの職員のご協力とご支援のおかげです。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皆様のより一層のご発展とご多祥をお祈りしております。

学生の皆様にもありがたい気持ちいっぱいです。

このブログはこれからも残して置きますので何かありましたらご連絡頂ければと思います。

私も個展などを開く際にはこのブログにも載せるかと思っております。

皆さんも展覧会などがありましたら知らせて頂ければと思います。





2022年6月2日木曜日

字幕のあるユーチューブ

 字幕のあるユーチューブを二つ紹介します。

「북올림」は本の内容を朗読するチャンネルです。

「夜史야사TV」は昔の野史を短いドラマ形式で話するチャンネル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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両方とも下に台詞の字幕が出るので、韓国語の学習になるかと思います。

時々見ながら韓国語の発音を覚えて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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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年6月1日火曜日

『白允生展』 -森の風-

 『白允生展』 -森の風-

 久しぶりの個展です。

 水墨画に関心がある方は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コロナ禍の中での展覧会ですので無理はなさらない様お願いします。


 期間 ; 5月30日(日)ー6月12日(土)
      毎週 木曜日休み
 時間 ; 12:00 〜 18:00
      最終日 16:00まで
 場所 ;『ギャラリー路地裏』
      中央区銀座7-3-16








2019年11月27日水曜日

年末年始

연말 연시

금년도 다 지나고 이제 열흘도 채 안 남았습니다. 어느 나라고 똑 같이 연말연시는 분주하게 지나 갑니다. 타이완, 중국은 한국과 같이 음력 설을 지내지만 일본의 명절, 기념일등은 전부 양력으로 쓰고 있습니다. 물론 설도 양력 설로서 신년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새배라든지 차례라든지는 없습니다만 절이나 신사를 참배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설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일본의 설은 한국과 같이 차례를 지낸다든지 새배를 하는등의 풍습은 없으나 그 외는 거의 대동소이 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가까워 지면 보통 때에는 잘 청소 하지 않는 곳이라든지 집 안 곳곳을 청소를 하고 깨끗한 환경 속에 새해를 맞이 하려 합니다. 예를 들면 정원의 나무까지도 손질을 봅니다. 그래서 11월부터 12월달 마지막까지의 기간은 정원 회사들이 대단히 바쁩니다. 도쿄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만 교토의 절에는 거의 대분분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 가정집들의 정원을 보면 우리나라의 마당과 일본의 마당에 대한 개념이 많이 틀리다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는 신년 2, 3일 전에 대문이던지 현관문에 신춘이라는 글을 붙이고 신년에 먹을 "오세치 요리(御節料理)"를 준비합니다. 신년 이 삼일 기간 중에는 가급적 음식도 안 만듭니다. 요즘은 오세치도 음식점이나 백화점에 주문하는 가정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만 제법 비싼 편입니다. 이러면 새로운 일년을 맞을 준비가 다 됀 샘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유명한 절이나 신사에는 섣달 그믐 날 밤부터 줄을 서서 자정이 되면 신년참배(初詣,하츠모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통의 가정에서는 NHK의 년말 가요홍백전을 보면서 신년을 맞이 합니다.

새해 첫날이 되면 먼저 아이들이 부모님과 가까운 친척들을 뵈러 갑니다. 새해 인사를 온 손자 손녀에게 할아버지는 "오도시다마(御年玉,새뱃돈)"를 줍니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현재 일본의 경우 친척 개념이 한국과는 크게 다릅니다. 한국은 제사등 친척을 만나는 기회가 많지만 일본은 친척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각 가정마다 틀리겠지만 거의 혼례, 상례 때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혼례의 경우에도 초대를 받은 사람만 참가하기 때문에 정말 친척이 함께 하는 자리가 적습니다. 새해 인사라 해도 거의 대부분이 부모와 가족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핵 가족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게 합니다. 새해 첫날에는 앞에서 이야기한 "오세치 요리"와 더불어 "오조니(御雑煮)"라는 떡이 들어 있는 국을 먹습니다. "오조니"는 지방, 가정에 따라 넣는 야채가 다릅니다. 저는 이 풍습도 한국의 떡국과 거의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남은 신년 기간은 년말 젊은 사람들이 밤에 간 "하츠모데"를 하러 절이나 신사에 갑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스미다가와 칠복신(隅田川七福神)"도 하츠모데의 대상으로 유명합니다. 칠복신이라는 것은 일곱 가지 복신인데 전국적으로 여러곳에 있습니다.

오늘이 동지입니다. 옛날에는 동짓날이 일 년의 시작이었던 때도 있었다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서 자기 나이보다 하나를 더먹어야 내년에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다며 한 알을 더 챙겨 먹은 것이 생각납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지난 해에 감사하고, 더 나은 새로운 일 년을 기원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다 같은 심정인 것 같습니다.



東アジアの文化・芸術

동아시아의 문화 예술

올해는 한일관계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일본에서 사는 저로서는 좀 염려 되는 점도 있습니다제가 맡은 동아시아라는 타이틀 속에서 실제로는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중국, 일본, 한국을 비교할 때도 있지 싶습니다. 저는 어디가 좋고 나쁨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아시아 삼국의 실태를 있는 그대로 전하려 합니다그저 제가 보고 느낀 점들이어서 어떤 부분은 실제와 틀릴 수도 있습니다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조금 전에 12시를 넘어, 시 월의 마지막 날 입니다. 지난 10월 3일은 "개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일은 중국의 "국경절"(國慶節, 건국 기념일)이며, 또 10 10일은 대만의 국경절인 "쌍십절"(雙十節중화민국의 건국 기념일)입니다정말 시 월은 문화의 달이며 건국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10월 1일은 중국의 건국 70주년 행사가 크게 보도 되었습니다. 저는 1994년 8월부터 1997년 7월까지 북경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가는 첫 해 10월에 건국 45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그날은 류리창(流璃廠)이라는 곳에 산보 겸해서 책을 사러 갔다가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 한참 헤매다가 겨우 숙소로 돌아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국은 건국 이래 매 5, 10주년 때는 북경 중심지에 계엄령이 내린다 합니다. 이유인즉 불꽃놀이를 대대적으로 하는데 안전을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 한답니다. 그날 밤 본 불꽃놀이는 지금까지 본 불꽃놀이 중에 가장 큰 불꽃인가 싶습니다. 제가 살던 기숙사는 외국인 전용 기숙사입니다. 모두들 떨어지는 불꽃을 쳐다 보며 불꽃 하나하나가 모두 중국 인민의 눈물이라며 본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1997년 초에는 등소평이 죽고, 출국 직전인 7월 1일에는 홍콩의 반환도 있었습니다. 당시 TV 중계를 보면서 홍콩의 미래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홍콩 또한 금년에 큰 사건이 일어났군요. 홍콩, 대만, 중국 등의 정치 문제는 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들의 말 "중국어"에 대해 조금 얘기 해 볼까 합니다.

조금 놀랄 일입니다만, 같은 한족이면서 홍콩 사람, 대만 사람, 북경 사람이 만약 표준어를 모른다면 서로의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필담은 가능하지만 말로는 완전히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만에 있을때 텔레비젼에는 늘 자막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중국은 방언이라는 게 아주 많아 100을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한국어” 또는 국어”라고 부릅니다일본에서도 일본어” 또는 국어”라 합니다그런데 중국에서는 표준어를 한어” 또는 보통화(普通話)”라고 합니다중국어라는 것에는  11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한, 만, 몽, 회, 장 다섯의 대민족과 50이상의 소수 민족이 있으며, 그들의 언어 또한 각각 다릅니다. 그 중에 한족의 언어가 “한어”이며 통용 언어입니다. 중국은 인구가 13억이 넘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  하나의 나라며 언어 또한 여러가지가 쓰이고 있는 다민족 국가입니다중국의 국부 손중산(孫中山、孫文) 선생은 이러한 민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대동사상(大同思想)"을 주장 했습니다.

“보통화”라고 하는 이유도 전반적으로 보통 통용되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대략 북경에서 상해까지의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통합니다. 제가 처음 북경에 가서 특별히 외국인 취급을  받은 경우도 많아, 지장이 있을 때도 많았습니다자랑같은 이야기를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실제 저보다 북경어를  하는 중국인도 많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티벳 사람이나 위글족 혹은 조선족등의 사람들 중에는 북경어를 잘 못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심지어 한족이라 하더라도 광동인복건성 등 특별한 사투리를 쓰는 지역의 사람들은 북경 사람들과의 언어 소통은 안 됩니다그런데 말은 안 통하지만 문자로 읽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진시황의 공적이기도 합니다갱유분서(坑儒焚書)로 악명이 높습니다만 그 결과 문자의 통일을 가져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어찌 보면 조선시대 때 조선인일본인중국인의 필담이 가능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북경어의 특이한 점은 몽골이나 만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살아 남았다는 점입니다. 아시다 싶이 17세기에 만주족이 중국을 침략해 청을 건국 했습니다그 결과 만주족의 말은 사라지고 한족의 말인 중국말이 되어 버렸습니다어찌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지배한 사람들의 말이 없어지고 지배를 당한 사람들의 언어 생활에 동화 되다니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이런 것들이 중화 문화의 대단한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요즘 다시 만주어 부활의 움직임과 만주족 황실의 "아이신쥐에르(愛新覺羅)"의 성도 다시 쓸 수 있다 합니다.

그런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보면 북경어가 표준말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만그 앞의 중화민국은 수도를 남경으로 정해 놓고 표준어는 수도가 아닌 북경어로 정했습니다당시 여러 곳의 말을 고려했다는 데 언어의 문자화로 보면 북경어가 가장 우수했다 합니다다른 곳의 말은 문자 표기가 안 되는 말이 많았다 합니다한글은 거의 대부분의 소리를 문자화가 가능한데 비하여 중국어에는 말은 있으나 문자 표기가 불가능 한 단어들이 많이 있다 합니다또한 당시에는 한 나라에 수도가 둘 있을 수 없다 하여 북경의 지명을 북평으로 바꿨습니다만, 1949년 현 중국이 수립 된 후에 다시 북경으로 바꾸고 남경은 그대로 남경으로 쓰기로 하고 지명을 바꾸지 않았다 합니다.

지금의 북경어를 "한어" 또는 "보통화"라고 하는데 그 글자는 "한자"라고 합니다. 우리도 한자라고 합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한자라고 하는 것과 지금 중국인이 한자라는 데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중국인이 한자라는 것은 그 외의 민족들의 문자와 달리 한족의 글자라는 뜻이며 우리가 한자라고 칭하는 것은 기원 전후에 있었던 한(漢) 나라의 문자라는 뜻입니다.

현재 세계의 문자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의 수는 약 칠만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의 중국인들이 아는 한자는 약 3, 4천 정도 밖에 알지 못하며, 그 외의 것들은 중국인들도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 한자의 가장  문제점은 역시 쓰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아직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맹 퇴치를 위해 한자의 간략화 방안으로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그리고 현재 한자는 한국대만홍콩등에서 쓰이고 있는 “번체자(繁體字)중국싱가포르에서 쓰는 “간체자(簡體字)일본에서 쓰고 있는 “약자(略字)”등 세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북경 유학 당시에 어떤 중국인들은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가 쓰는 한자가 달라 다시 통일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한국의 교과서에도 한자를 썼습니다. 중학교 이상의 과정에서 썼는데, 한자를 안 쓰기 시작한 것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1968년) 부터입니다. 그 해는시행 첫해라서 아직 새 교과서가 인쇄 되지 않아 한자가 섞여 있는 교과서를 받아 연필로 지워 가며 수업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7, 8년 뒤에 "한문"이라는 교과가 생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교육에 있어서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 일기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살이 다 된 대만에 가서 부터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자를 쓰는 것은 익숙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습니다. 역시 어릴 때부터 배운 일본 사람은 중국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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