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年11月27日水曜日

東アジアの文化・芸術

동아시아의 문화 예술

올해는 한일관계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일본에서 사는 저로서는 좀 염려 되는 점도 있습니다제가 맡은 동아시아라는 타이틀 속에서 실제로는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중국, 일본, 한국을 비교할 때도 있지 싶습니다. 저는 어디가 좋고 나쁨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아시아 삼국의 실태를 있는 그대로 전하려 합니다그저 제가 보고 느낀 점들이어서 어떤 부분은 실제와 틀릴 수도 있습니다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조금 전에 12시를 넘어, 시 월의 마지막 날 입니다. 지난 10월 3일은 "개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 1일은 중국의 "국경절"(國慶節, 건국 기념일)이며, 또 10 10일은 대만의 국경절인 "쌍십절"(雙十節중화민국의 건국 기념일)입니다정말 시 월은 문화의 달이며 건국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10월 1일은 중국의 건국 70주년 행사가 크게 보도 되었습니다. 저는 1994년 8월부터 1997년 7월까지 북경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가는 첫 해 10월에 건국 45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그날은 류리창(流璃廠)이라는 곳에 산보 겸해서 책을 사러 갔다가 왕푸징(王府井)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 한참 헤매다가 겨우 숙소로 돌아간 기억이 생생합니다. 중국은 건국 이래 매 5, 10주년 때는 북경 중심지에 계엄령이 내린다 합니다. 이유인즉 불꽃놀이를 대대적으로 하는데 안전을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 한답니다. 그날 밤 본 불꽃놀이는 지금까지 본 불꽃놀이 중에 가장 큰 불꽃인가 싶습니다. 제가 살던 기숙사는 외국인 전용 기숙사입니다. 모두들 떨어지는 불꽃을 쳐다 보며 불꽃 하나하나가 모두 중국 인민의 눈물이라며 본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1997년 초에는 등소평이 죽고, 출국 직전인 7월 1일에는 홍콩의 반환도 있었습니다. 당시 TV 중계를 보면서 홍콩의 미래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홍콩 또한 금년에 큰 사건이 일어났군요. 홍콩, 대만, 중국 등의 정치 문제는 답이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들의 말 "중국어"에 대해 조금 얘기 해 볼까 합니다.

조금 놀랄 일입니다만, 같은 한족이면서 홍콩 사람, 대만 사람, 북경 사람이 만약 표준어를 모른다면 서로의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필담은 가능하지만 말로는 완전히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만에 있을때 텔레비젼에는 늘 자막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중국은 방언이라는 게 아주 많아 100을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말을 한국어” 또는 국어”라고 부릅니다일본에서도 일본어” 또는 국어”라 합니다그런데 중국에서는 표준어를 한어” 또는 보통화(普通話)”라고 합니다중국어라는 것에는  11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한, 만, 몽, 회, 장 다섯의 대민족과 50이상의 소수 민족이 있으며, 그들의 언어 또한 각각 다릅니다. 그 중에 한족의 언어가 “한어”이며 통용 언어입니다. 중국은 인구가 13억이 넘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  하나의 나라며 언어 또한 여러가지가 쓰이고 있는 다민족 국가입니다중국의 국부 손중산(孫中山、孫文) 선생은 이러한 민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대동사상(大同思想)"을 주장 했습니다.

“보통화”라고 하는 이유도 전반적으로 보통 통용되는 언어라는 뜻입니다. 대략 북경에서 상해까지의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통합니다. 제가 처음 북경에 가서 특별히 외국인 취급을  받은 경우도 많아, 지장이 있을 때도 많았습니다자랑같은 이야기를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실제 저보다 북경어를  하는 중국인도 많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티벳 사람이나 위글족 혹은 조선족등의 사람들 중에는 북경어를 잘 못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심지어 한족이라 하더라도 광동인복건성 등 특별한 사투리를 쓰는 지역의 사람들은 북경 사람들과의 언어 소통은 안 됩니다그런데 말은 안 통하지만 문자로 읽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진시황의 공적이기도 합니다갱유분서(坑儒焚書)로 악명이 높습니다만 그 결과 문자의 통일을 가져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어찌 보면 조선시대 때 조선인일본인중국인의 필담이 가능 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북경어의 특이한 점은 몽골이나 만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살아 남았다는 점입니다. 아시다 싶이 17세기에 만주족이 중국을 침략해 청을 건국 했습니다그 결과 만주족의 말은 사라지고 한족의 말인 중국말이 되어 버렸습니다어찌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지배한 사람들의 말이 없어지고 지배를 당한 사람들의 언어 생활에 동화 되다니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이런 것들이 중화 문화의 대단한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요즘 다시 만주어 부활의 움직임과 만주족 황실의 "아이신쥐에르(愛新覺羅)"의 성도 다시 쓸 수 있다 합니다.

그런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보면 북경어가 표준말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만그 앞의 중화민국은 수도를 남경으로 정해 놓고 표준어는 수도가 아닌 북경어로 정했습니다당시 여러 곳의 말을 고려했다는 데 언어의 문자화로 보면 북경어가 가장 우수했다 합니다다른 곳의 말은 문자 표기가 안 되는 말이 많았다 합니다한글은 거의 대부분의 소리를 문자화가 가능한데 비하여 중국어에는 말은 있으나 문자 표기가 불가능 한 단어들이 많이 있다 합니다또한 당시에는 한 나라에 수도가 둘 있을 수 없다 하여 북경의 지명을 북평으로 바꿨습니다만, 1949년 현 중국이 수립 된 후에 다시 북경으로 바꾸고 남경은 그대로 남경으로 쓰기로 하고 지명을 바꾸지 않았다 합니다.

지금의 북경어를 "한어" 또는 "보통화"라고 하는데 그 글자는 "한자"라고 합니다. 우리도 한자라고 합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한자라고 하는 것과 지금 중국인이 한자라는 데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중국인이 한자라는 것은 그 외의 민족들의 문자와 달리 한족의 글자라는 뜻이며 우리가 한자라고 칭하는 것은 기원 전후에 있었던 한(漢) 나라의 문자라는 뜻입니다.

현재 세계의 문자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의 수는 약 칠만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의 중국인들이 아는 한자는 약 3, 4천 정도 밖에 알지 못하며, 그 외의 것들은 중국인들도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 한자의 가장  문제점은 역시 쓰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아직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맹 퇴치를 위해 한자의 간략화 방안으로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그리고 현재 한자는 한국대만홍콩등에서 쓰이고 있는 “번체자(繁體字)중국싱가포르에서 쓰는 “간체자(簡體字)일본에서 쓰고 있는 “약자(略字)”등 세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북경 유학 당시에 어떤 중국인들은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가 쓰는 한자가 달라 다시 통일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한국의 교과서에도 한자를 썼습니다. 중학교 이상의 과정에서 썼는데, 한자를 안 쓰기 시작한 것은 제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1968년) 부터입니다. 그 해는시행 첫해라서 아직 새 교과서가 인쇄 되지 않아 한자가 섞여 있는 교과서를 받아 연필로 지워 가며 수업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7, 8년 뒤에 "한문"이라는 교과가 생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의 교육에 있어서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 일기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살이 다 된 대만에 가서 부터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한자를 쓰는 것은 익숙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습니다. 역시 어릴 때부터 배운 일본 사람은 중국인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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